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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가 나무에게
-관옥觀玉 이현주 시


네가 여린 싹으로 터서 땅 속 어둠을 뚫고
태양을 향해 마침내 위로 오를 때
나는 오직 아래로
아래로 눈먼 손 뻗어 어둠 헤치며 내려만 갔다


네가 줄기로 솟아 봄날 푸른 잎을 낼 때
나는 여전히 아래로
더욱 아래로 막힌 어둠을 더듬었다


네가 드디어 꽃을 피우고
춤추는 나비 벌과 삶을 희롱 할 때에도
나는 거대한 바위에 맞서 몸살을 하며
보이지 않는 눈으로 바늘 끝 같은 틈을 찾아야 했다


어느 날 네가 사나운 비바람 맞으며
가지가 찢어지고 뒤틀려 신음 할 때
나는 너를 위하여 오직 안타까운 마음일 뿐이었으나
나는 믿었다.
내가 이 어둠을 온 몸으로 부둥켜안고 있는 한
너는 쓰러지지 않으리라고


모든 시련 사라지고 가을이 되어
네가 탐스런 열매를 가지마다 맺을 때
나는 더 많은 물을  얻기 위하여
다시 아래로 내려가야만 했다.


잎 지고 열매 떨구고 네가 겨울의 휴식에 잠길 때에도
나는 흙에 묻혀 가쁘게 숨을 쉬었다


봄이 오면 너는 다시 영광을 누리려니와
나는 잊어도 좋다.
어둠처럼 까맣게 잊어도 좋다



사진 / 다산초당茶山草堂  오르는 길, 2012. 3. 양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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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버이날도 지났고 내일은 스승의 날입니다.
생각해 보면 사람 뿐 아니라 기꺼이 뿌리가 되는 존재들은 참 많습니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뿌리가 되어주고 있는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