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느리게, 있는 그대로
-피에르 쌍소
게으르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둔다는 것이다.
그것은 슬기로움이나 너그러움의 한 형태다.
물러났다가 세상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한가로이 거닐기, 남의 말 들어 주기, 꿈꾸기, 글쓰기 따위처럼
사람들이 별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버려진 순간에 깃들여 있다.
존재의 아름다운 순간을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그 순간은 놀라움의 순간이다. 여전히 살아 숨쉬는 순간이고,
당신의 말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는 한 사람과 마주하고 있는 순간이다.
웃음을 띤 채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러한 순간이다.
게으름은 어디 아픈 것처럼 꼼짝도 하기 싫어하는 증세가 아니다.
천천히, 느리게, 있는 그대로 삶을 누리려는 몸가짐이자 마음가짐이다.
아주 천천히 가고 있어서 삶의 저물녘에, 막바지 노을 속에서,
영원히 저녁 빛을 숨쉬는 그러한 능력이 게으름이다.
- 피에르 쌍소(1928-2005 · 철학자)의 《게으름의 즐거움》(함유선 옮김, 호미, 1997년)에서
- 2009년 4월호《성서와 함께》 '머릿돌' 글(편집부 발췌)
나무가 쉬는 것이지 사람이 쉬는것 같지 않고,
나무의 쉼안에 그냥 하나로 동화 되어서 잠시 자연에 꿈을 꾸는
어린왕자가 아닐까 생각하여 봅니다.
우리는 자연의 주인인 것처럼 하면서도 항상 손님처럼 머물다가 가버리는 가벼움에서
또 다른 기다림을 꿈꾸며 문명에 숨소리에 파묻히고 다시 정화하려 손님처럼 찾아옵니다.
자연도, 지구라는 것도, 우주라는 것도, 신의 것이라면 우리는 모두 손님임을 생각하고
잠시의 꿈에서 머물다가 다시 신에게 돌려주는 오늘의 주인임을 ...
어느때는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큰 부담의 마음 들이고 그것을 알맞게 나누며 산다는 것이
주어진 생명의 의무처럼 십자가의 무거움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큰 나무처럼 이웃과 함께하는 내일을 기다리면서 잠시 오늘이라는 시간에 열심히라는
노력의 인내들을 일구어 봅니다.
주위에 왜 이리 어려운 이들이 많은지,모두 잘 되어지기를 바램해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