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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사자 석등 (陜川 靈岩寺址 雙獅子 石燈), 보물 제3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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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형 계단 위의 쌍사자 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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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층석탑 (陜川 靈岩寺址 三層石塔)  단면, 보물 제480호

-주위로 보수 작업 중인 관계로 다음 기회에 전체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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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천 영암사지 (陜川 靈岩寺址) 사적  제131호

황매산의 남쪽 기슭에 있는 절터이다. 처음 지어진 연대는 정확히 모르나, 고려 현종 5년(1014)에 적연선사가 이 곳에서 83세에 입적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홍각선사비의 조각 중에도 ‘영암사’라는 절의 이름이 보이는데, 홍각선사비가 886년에 세워졌다는 점에서 영암사의 연대를 짐작할 수 있다.

발굴을 통해 조사해본 결과, 불상을 모셨던 금당·서금당·회랑터·기타 건물터가 확인되어 당시 절의 규모를 알 수 있고, 금당은 3차례에 걸쳐 다시 지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절터에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쌍사자석등(보물 제353호)·삼층석탑·귀부·당시의 건물 받침돌·각종 기와조각 들이 남아있다. 특히 금동여래입상은 8세기경의 것으로, 절의 창건연대를 살피는데 중요하다.

영암사의 건물터는 일반 사찰 건물과 다른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금당이 있는 상단 축대의 중앙 돌출부 좌우에 계단이 있는 점, 금당지 연석에 얼굴모양이 조각되었고 후면을 제외한 3면에 동물상을 돋을새김한 점, 서남쪽 건물터의 기단 좌우에 계단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이러한 특징과 더불어 절터 내에 흩어져있는 석조물은 이색적인 느낌마저 준다.

조형의 특이함과 입지 조건, 서남쪽 건물의 구획안에서 많은 재가 나오는 점으로 보아 신라 말에 성행한 밀교의 수법으로 세워진 절로 보인다.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 (陜川 靈岩寺址 雙獅子 石燈)
영암사터에 세워진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으로, 1933년경 일본인들이 불법으로 가져가려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막아 면사무소에 보관하였다가 1959년 절터에 암자를 세우고 원래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

석등은 일반적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하여, 아래로는 이를 받치기 위한 3단의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얹었다. 이 석등은 사자를 배치한 가운데받침돌을 제외한 각 부분이 모두 통일신라시대의 기본형태인 8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래받침돌에는 연꽃모양이 조각되었고 그 위로 사자 두 마리가 가슴을 맞대고 서 있다. 사자의 뒷발은 아래받침돌을 딛고 있으며, 앞발은 들어서 윗받침돌을 받들었다. 머리는 위로 향하고 갈퀴와 꼬리, 근육 등의 표현이 사실적이다. 화사석은 4면에 창이 있고 다른 4면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조각되었다. 사천왕은 불교의 법을 지키는 신으로 당시 호국사상의 목적아래 많이 나타나게 되었다. 지붕돌은 8각으로 얇고 평평하며,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자그마한 꽃조각이 솟아있다.

각 부분의 양식이나 조각으로 보아 통일신라 전성기에 비해 다소 형식화된 면을 보이고 있어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며,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국보 제5호)과 견줄 수 있는 걸작이라 할 수 있다.

 

출처 : 문화재청


사진 / 양병주,  합천 영암사지, 2012. 09. 018